“치유하지 못하는 한국… 이제 끝내자, 잊자 하지 말아요”

“독일 베를린 거리를 걷다 보면 곳곳에 ‘걸려 넘어지는 돌’이라는 뜻의 슈톨퍼슈타이네(Stolpersteine)라는 작은 동판이 있어요. 나치에 의해 학살된 유대인이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 앞에 그의 이름과 언제 어디에서 태어나고 죽었는지를 새겼어요. 동판의 이름은 걸림돌이지만 저는 그게 독일의 디딤돌이 됐다고 봐요.”이태원 참사 후 20여일, 한국사회 전체에 충격을 준 초유의 압사 사고가 남긴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채정호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게 묻자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독일은 ‘외상 후 성장’을 이룬 대표적인 나라죠.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을 죽였지만 철저하게 과거를 기억하고 반성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이제 끝내자, 그만하자면서 자꾸 참사를 잊어버리고 싶어 하죠. 기억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어요. 과연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나요.”국내에서 손꼽히는 트라우마(심리적 외상) 권위자인 채 교수는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초대 학회장이자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재난정신건강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2003년 193명이 목숨을 잃은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대한불안의학회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연구회를 출범시키고 2018년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설립되는 데 일조했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개인적인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힘으로 눈물의 힘, 말의 힘, 시간의 힘을 말씀한 바 있다. 마음껏 울고 힘들다고 말하고 충분히 애도하라는 조언이었는데, 지금 같은 집단 트라우마에는 어떤 처방이 있을까.“저는 ‘고통의 곁’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다른 사람이 받는 고통은 내가 아무리 공감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고통을 인정하고 곁에 있는 것만으로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어떤 이유의 트라우마든지 ‘정말 힘들겠다, 고생했다, 나는 네 곁에 있겠다’고 하면 견뎌낸다. 그리고 그 죽음에 의미가 있다면 견딘다.”-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의미 말인가.“트라우마는 의미를 만들지 않으면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다. 트라우마를 입은 부모들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무척 애쓴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을 만드신 분도 학폭으로 아들을 잃었고,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을 세운 분도 1999년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 때 딸 쌍둥이를 잃었다. 희생의 의미를 만들어주는 게 살아있는 사람들이 할 일이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에 ‘세상이 더 안전해져야 한다’ ‘사회 부조리가 없어져야 한다’ 같은 의미가 부여되면 유족들이 견딜 수 있을 것이다.”채 교수의 설명이 이어졌다.“미국은 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50년대 한국전쟁, 60~70년대 베트남전을 치렀다. 2차 대전과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은 세계 평화를 지키고 공산주의와 맞서 싸운 영웅 대접을 받았지만 베트남전은 반전운동도 심했고 군인들은 돈 벌러 간 용병 취급을 받았다. 그래서 앞선 두 전쟁에 비해 베트남 파병군에 정신적인 문제가 훨씬 많았다. 베트남전이 75년에 종전된 후 80년에 PTSD라는 진단명이 처음으로 공식화됐다. 이전에는 전쟁신경증 같은 이름으로 불렸는데 베트남전 이후 환자가 폭증하면서 독립된 병으로 보게 된 것이다.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들을 어떻게 예우하느냐가 병을 가른다.”-그런 맥락으로 본다면 세월호 이후에도 안전한 세상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셈인데.“이태원 참사가 굉장히 상징적인 게, 한 명이 넘어지면 같이 쓰러지는 게 사회다. 트라우마가 있고 고통이 많은 사람이 늘어나면 사회가 좋아질 수 없다. 어떤 사람이 트라우마를 입으면 그 가족이 힘들고, 그 가족이 다니는 학교와 직장까지 일파만파다. 쓰러진 한 명을 일으켜 세우는 게 우리를 위한 길이다. 더 안전해져도 사고가 일어나고 자연재해가 일어난다. 우리가 막을 수 없는 사고는 어쩔 수 없지만 트라우마로 넘어진 사람을 밟지 않고 다시 설 수 있게 하는 게 국가의 격, 사람의 격이라고 생각한다.”-국격 말인가.“2014년 세월호가 침몰하고 3개월 뒤에 네덜란드에서 말레이시아로 향하던 비행기가 추락했다. 우크라이나 친러 반군이 쏜 미사일에 격추돼 300명 가까이 사망했다. 탑승객 대부분이 네덜란드인이었는데 수습된 시신이 돌아왔을 때 네덜란드 국왕과 내각 전체가 공항에 나가서 유족 한 명 한 명을 꼭 안아줬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인명이 희생됐는데 10년 가까이 가느냐 국민적 애도 속에 끝나느냐는 죽음 직후에 얼마나 예우를 받았느냐의 차이다. 유해를 실은 차량 행렬을 위해 교통을 통제했을 때 네덜란드 시민들은 길을 막았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연도에서 꽃을 던지며 애도를 표했다. 사람의 죽음 앞에 어떻게 행동하느냐, 그게 국가의 격이다.”-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많게는 1만명이 트라우마를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고, 정부는 지난 17일까지 3600여건의 심리 상담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트라우마 치료에도 골든타임이 있을 텐데.“세월호 유가족 중에 상담이나 치료를 받은 분과 그렇지 않은 분을 추적했더니 정신과에서 초기에 개입한 분들이 훨씬 잘 지낸다는 연구가 있다. 문제는 골든타임에 초기 개입을 했지만 2차, 3차 가해가 계속되는 경우다. 세월호 때 단식 투쟁하는 유족 옆에서 폭식하고, 댓글로 끊임없이 일종의 가해가 이어졌다. 그런 것 때문에 트라우마가 만성화된다.”-이번 이태원 참사에도 악성 댓글이 달리고 현장 사진이 유포됐다.“설령 마음에 안 들어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 말 하지 않으면 된다. 공감을 할 수 없어도 트라우마로 고통스러워하면 그렇구나, 인정하면 된다. ‘놀러 갔다 죽었는데 왜 세금으로 지원해야 하나’ 이런 댓글을 쓰는 순간 치료 기간이 더 길어지고 세금은 더 들어간다. 이태원 현장 사진과 동영상을 갖고 있다는 걸 과시하는 건 ‘좋아요’를 많이 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큰 인정 결핍증이다. 그런 정보가 얼마나 유해한지 알아야 한다. 내가 올리고 퍼나른 사진을 보고 트라우마가 생기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건 내가 발병 요인을 제공한 것 아닌가.”-우리 정부가 위기 커뮤니케이션에 취약하다고 지적하신 적이 있다. 정부는 이번에도 공식 사과를 하지 않은 채로 참사 이틀 뒤 대뜸 위로금과 장례비 지급 이야기부터 꺼냈다.“‘내 책임이 아니다’ 식의 위기 커뮤니케이션이다. 세월호가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위기 상황에는 좋지 않은 것부터 솔직하게 공개해야 하는데 전원 구조, 에어포켓, 골든타임 72시간처럼 낙관적 면만 발표하면서 불신을 키웠다. 이번에도 무한 책임을 지겠다, 이런 참사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게 원칙이어야 했다.”-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닌 외상 후 성장을 말했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 이야기인가.“회복탄력성은 대개 이전 상태까지 올라오는 힘, 견디는 힘을 가리키지만 외상 후 성장은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발전하는 경우를 말한다.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 중 10% 정도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지만 반대로 10% 정도는 트라우마 이후 더 단단해진 삶을 살기도 한다.세월호 유가족 중에도 본인이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세상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분들이 10~20% 된다. 이런 분들이 많아지는 게 외상 후 성장이고, 외상 후 성장을 할 수 있게 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잇단 참사로 한국에 트라우마가 많아 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트라우마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나라가 또 우리나라다. 나라가 없어진 때도 있었지만 계속 성장해 오지 않았나.”-트라우마는 개인이 이겨내야 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시각은 여전하다.“물론 잘 극복하는 사람이 있다. 오프라 윈프리는 성폭행을 당하고 14세에 출산을 했지만 미국 최고의 방송인이 됐다. 견디는 사람이 있으니 트라우마 따위야 이겨내면 된다, 그게 우리의 잘못된 시각이다. 트라우마가 많은 집단에서 훌륭하게 자란 사람 중에는 부모든 교사든 아이를 믿고 지지해준 누군가가 있었다는 연구가 있다. 트라우마에서 회복되는 데 한 사람이 중요하다는 얘기인데, 문제는 언제까지 개인에게 맡겨둘 것이냐는 점이다. 내가 무너지는 트라우마를 당했을 때 사회가 나를 도울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안전한 사회다.”-기억을 강조했는데, 대형 참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미국은 기념 병원, 기념 학교, 기념 박물관을 만든다. 9·11 테러로 무너진 뉴욕 세계무역센터 자리에도 새 건물을 짓지 않고 9·11 메모리얼 파크를 만들었다. 집단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면 그런 메모리얼을 통해 국가와 사회에서 큰 의미를 만들어줘야 한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잊으려 하지만 상처를 덮어두면 곪고 썩는다.”우리나라는 추모비를 세우는 데도 인색하다. 32명이 사망한 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희생자 위령비는 성수대교 북단 한강 둔치에 자리 잡았지만 강변북로 진출입 램프가 설치되면서 접근하기 어려워졌다. 502명이 목숨을 잃은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희생자 위령탑은 참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양재시민의 숲에 있다. 그리고 성수대교에서 등교하다 변을 당한 여고생의 아버지가, 삼풍에서 아내와 아들을 잃은 가장이 사고 4~5년 후에 위령비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가족에 대한 심리 지원이 전혀 없던 시절이었다.-한 인터넷 매체가 유족의 동의 없이 희생자 명단을 공개해 논란이 됐다. 명단이 있어야만 기억할 수 있는 건 아닐 텐데.“기억하기 위해 무엇을 할지 유족에게 끊임없이 물어보고 그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게 트라우마 감수성의 기본이다. 모든 트라우마는 존중받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내 생명이, 내 육체가, 내 의사가 존중받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 아닌가.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명단 공개라는 디테일을 가지고 싸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늘 피해자를 존중하고 있는가를 돌아보자. 결국은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다.”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hskwon@kmib.co.kr

“치유하지 못하는 한국… 이제 끝내자, 잊자 하지 말아요”

“독일 베를린 거리를 걷다 보면 곳곳에 ‘걸려 넘어지는 돌’이라는 뜻의 슈톨퍼슈타이네(Stolpersteine)라는 작은 동판이 있어요. 나치에 의해 학살된 유대인이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 앞에 그의 이름과 언제 어디에서 태어나고 죽었는지를 새겼어요. 동판의 이름은 걸림돌이지만 저는 그게 독일의 디딤돌이 됐다고 봐요.”

이태원 참사 후 20여일, 한국사회 전체에 충격을 준 초유의 압사 사고가 남긴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채정호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게 묻자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독일은 ‘외상 후 성장’을 이룬 대표적인 나라죠.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을 죽였지만 철저하게 과거를 기억하고 반성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이제 끝내자, 그만하자면서 자꾸 참사를 잊어버리고 싶어 하죠. 기억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어요. 과연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나요.”

국내에서 손꼽히는 트라우마(심리적 외상) 권위자인 채 교수는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초대 학회장이자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재난정신건강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2003년 193명이 목숨을 잃은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대한불안의학회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연구회를 출범시키고 2018년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설립되는 데 일조했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힘으로 눈물의 힘, 말의 힘, 시간의 힘을 말씀한 바 있다. 마음껏 울고 힘들다고 말하고 충분히 애도하라는 조언이었는데, 지금 같은 집단 트라우마에는 어떤 처방이 있을까.

“저는 ‘고통의 곁’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다른 사람이 받는 고통은 내가 아무리 공감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고통을 인정하고 곁에 있는 것만으로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어떤 이유의 트라우마든지 ‘정말 힘들겠다, 고생했다, 나는 네 곁에 있겠다’고 하면 견뎌낸다. 그리고 그 죽음에 의미가 있다면 견딘다.”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의미 말인가.

“트라우마는 의미를 만들지 않으면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다. 트라우마를 입은 부모들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무척 애쓴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을 만드신 분도 학폭으로 아들을 잃었고,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을 세운 분도 1999년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 때 딸 쌍둥이를 잃었다. 희생의 의미를 만들어주는 게 살아있는 사람들이 할 일이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에 ‘세상이 더 안전해져야 한다’ ‘사회 부조리가 없어져야 한다’ 같은 의미가 부여되면 유족들이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채 교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미국은 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50년대 한국전쟁, 60~70년대 베트남전을 치렀다. 2차 대전과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은 세계 평화를 지키고 공산주의와 맞서 싸운 영웅 대접을 받았지만 베트남전은 반전운동도 심했고 군인들은 돈 벌러 간 용병 취급을 받았다. 그래서 앞선 두 전쟁에 비해 베트남 파병군에 정신적인 문제가 훨씬 많았다. 베트남전이 75년에 종전된 후 80년에 PTSD라는 진단명이 처음으로 공식화됐다. 이전에는 전쟁신경증 같은 이름으로 불렸는데 베트남전 이후 환자가 폭증하면서 독립된 병으로 보게 된 것이다.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들을 어떻게 예우하느냐가 병을 가른다.”


-그런 맥락으로 본다면 세월호 이후에도 안전한 세상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셈인데.

“이태원 참사가 굉장히 상징적인 게, 한 명이 넘어지면 같이 쓰러지는 게 사회다. 트라우마가 있고 고통이 많은 사람이 늘어나면 사회가 좋아질 수 없다. 어떤 사람이 트라우마를 입으면 그 가족이 힘들고, 그 가족이 다니는 학교와 직장까지 일파만파다. 쓰러진 한 명을 일으켜 세우는 게 우리를 위한 길이다. 더 안전해져도 사고가 일어나고 자연재해가 일어난다. 우리가 막을 수 없는 사고는 어쩔 수 없지만 트라우마로 넘어진 사람을 밟지 않고 다시 설 수 있게 하는 게 국가의 격, 사람의 격이라고 생각한다.”

-국격 말인가.

“2014년 세월호가 침몰하고 3개월 뒤에 네덜란드에서 말레이시아로 향하던 비행기가 추락했다. 우크라이나 친러 반군이 쏜 미사일에 격추돼 300명 가까이 사망했다. 탑승객 대부분이 네덜란드인이었는데 수습된 시신이 돌아왔을 때 네덜란드 국왕과 내각 전체가 공항에 나가서 유족 한 명 한 명을 꼭 안아줬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인명이 희생됐는데 10년 가까이 가느냐 국민적 애도 속에 끝나느냐는 죽음 직후에 얼마나 예우를 받았느냐의 차이다. 유해를 실은 차량 행렬을 위해 교통을 통제했을 때 네덜란드 시민들은 길을 막았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연도에서 꽃을 던지며 애도를 표했다. 사람의 죽음 앞에 어떻게 행동하느냐, 그게 국가의 격이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많게는 1만명이 트라우마를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고, 정부는 지난 17일까지 3600여건의 심리 상담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트라우마 치료에도 골든타임이 있을 텐데.

“세월호 유가족 중에 상담이나 치료를 받은 분과 그렇지 않은 분을 추적했더니 정신과에서 초기에 개입한 분들이 훨씬 잘 지낸다는 연구가 있다. 문제는 골든타임에 초기 개입을 했지만 2차, 3차 가해가 계속되는 경우다. 세월호 때 단식 투쟁하는 유족 옆에서 폭식하고, 댓글로 끊임없이 일종의 가해가 이어졌다. 그런 것 때문에 트라우마가 만성화된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도 악성 댓글이 달리고 현장 사진이 유포됐다.

“설령 마음에 안 들어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 말 하지 않으면 된다. 공감을 할 수 없어도 트라우마로 고통스러워하면 그렇구나, 인정하면 된다. ‘놀러 갔다 죽었는데 왜 세금으로 지원해야 하나’ 이런 댓글을 쓰는 순간 치료 기간이 더 길어지고 세금은 더 들어간다. 이태원 현장 사진과 동영상을 갖고 있다는 걸 과시하는 건 ‘좋아요’를 많이 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큰 인정 결핍증이다. 그런 정보가 얼마나 유해한지 알아야 한다. 내가 올리고 퍼나른 사진을 보고 트라우마가 생기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건 내가 발병 요인을 제공한 것 아닌가.”


-우리 정부가 위기 커뮤니케이션에 취약하다고 지적하신 적이 있다. 정부는 이번에도 공식 사과를 하지 않은 채로 참사 이틀 뒤 대뜸 위로금과 장례비 지급 이야기부터 꺼냈다.

“‘내 책임이 아니다’ 식의 위기 커뮤니케이션이다. 세월호가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위기 상황에는 좋지 않은 것부터 솔직하게 공개해야 하는데 전원 구조, 에어포켓, 골든타임 72시간처럼 낙관적 면만 발표하면서 불신을 키웠다. 이번에도 무한 책임을 지겠다, 이런 참사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게 원칙이어야 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닌 외상 후 성장을 말했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 이야기인가.

“회복탄력성은 대개 이전 상태까지 올라오는 힘, 견디는 힘을 가리키지만 외상 후 성장은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발전하는 경우를 말한다.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 중 10% 정도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지만 반대로 10% 정도는 트라우마 이후 더 단단해진 삶을 살기도 한다.

세월호 유가족 중에도 본인이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세상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분들이 10~20% 된다. 이런 분들이 많아지는 게 외상 후 성장이고, 외상 후 성장을 할 수 있게 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잇단 참사로 한국에 트라우마가 많아 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트라우마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나라가 또 우리나라다. 나라가 없어진 때도 있었지만 계속 성장해 오지 않았나.”

-트라우마는 개인이 이겨내야 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시각은 여전하다.

“물론 잘 극복하는 사람이 있다. 오프라 윈프리는 성폭행을 당하고 14세에 출산을 했지만 미국 최고의 방송인이 됐다. 견디는 사람이 있으니 트라우마 따위야 이겨내면 된다, 그게 우리의 잘못된 시각이다. 트라우마가 많은 집단에서 훌륭하게 자란 사람 중에는 부모든 교사든 아이를 믿고 지지해준 누군가가 있었다는 연구가 있다. 트라우마에서 회복되는 데 한 사람이 중요하다는 얘기인데, 문제는 언제까지 개인에게 맡겨둘 것이냐는 점이다. 내가 무너지는 트라우마를 당했을 때 사회가 나를 도울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안전한 사회다.”

-기억을 강조했는데, 대형 참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

“미국은 기념 병원, 기념 학교, 기념 박물관을 만든다. 9·11 테러로 무너진 뉴욕 세계무역센터 자리에도 새 건물을 짓지 않고 9·11 메모리얼 파크를 만들었다. 집단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면 그런 메모리얼을 통해 국가와 사회에서 큰 의미를 만들어줘야 한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잊으려 하지만 상처를 덮어두면 곪고 썩는다.”

우리나라는 추모비를 세우는 데도 인색하다. 32명이 사망한 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희생자 위령비는 성수대교 북단 한강 둔치에 자리 잡았지만 강변북로 진출입 램프가 설치되면서 접근하기 어려워졌다. 502명이 목숨을 잃은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희생자 위령탑은 참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양재시민의 숲에 있다. 그리고 성수대교에서 등교하다 변을 당한 여고생의 아버지가, 삼풍에서 아내와 아들을 잃은 가장이 사고 4~5년 후에 위령비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가족에 대한 심리 지원이 전혀 없던 시절이었다.


-한 인터넷 매체가 유족의 동의 없이 희생자 명단을 공개해 논란이 됐다. 명단이 있어야만 기억할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기억하기 위해 무엇을 할지 유족에게 끊임없이 물어보고 그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게 트라우마 감수성의 기본이다. 모든 트라우마는 존중받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내 생명이, 내 육체가, 내 의사가 존중받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 아닌가.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명단 공개라는 디테일을 가지고 싸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늘 피해자를 존중하고 있는가를 돌아보자. 결국은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hskwon@kmib.co.kr